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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나는 왜 사는가? 꿈을 이루기 위하여 살았고 진실을 양날의 칼날 위에서 한 날도 부끄럽지 않기를! 원하였고! 나의 삶에서 만들어진 피조물과 연결된 고리의 아픈 기억을 지우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나는 왜 사는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어질 어진 삶을 바로 잡아 남은 시간! 그리움과 아픈 기억의 청소를 위함이다. 내일 새로운 날이 있다고 믿지 않는 현실은 활시위를 떠난 나의 철학의 미래다! 그대 잘살고 있는가? 절망의 삶에서 희망을 발견한 그대! 인생 다 그렇고 다 그런 것입니다!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빈 수레 같은 것이라오!
감정
현실을 살아 가면서 만들어진 거칠어진 감정들 같은것을 바라보지 못하여 만들어진 비뚤어진 생각들! 벗어나지 못하여 힘들어지는 감정의 함정은 또다른 시간을 만난다. 내가 원하는 선한가치는 밀려 나고 기준을 정하는 함정은 나를 바로 설수 있게 하는 들 읶은 청춘을 아직오 감정의 흔들림으로 미래를 보는 눈은 자신이 만드는 함정에서 밀려나고 있다! 공허한 상태로 만들지 못한 시간의 벽 다듬지 못하고 순간의 감정으로 내동댕이 쳐진 내자신을 다시 보게 한다. 일요일 허한 감정은 또다른 나를 보게 한다. 봄날! 나는 씨앗을 심었는가? 더운 열기로 채울 여름날의 내자신을 다듬어 가을로 향하는 나는 지금 이미 수확하는 게절을 기다린다! 그대 잘 살아 냅시다!
[ 금보다 귀한 팁 ]
1).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면,
끓는 물에
양파 몇 조각을 넣은 후,
잠시 우려내자~!!
이렇게 만든
양파차가 사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2시간 안에 효과가
바로 나타납니다!
몸살 기운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가래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감기 증세가 심하다면,
양파 몇 조각을 날 것 채로
더 먹으면 됩니다!
양파차를
조금만 마셔보세요!
숨쉬는 것 마저
편해질 것입니다!
2).
귀가 아플 때
귀가 아파본 적이 있다면,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머리까지 깨질 것 같은
이 고통은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파 한 조각을
귀에 넣으면 놀랍게도
통증이 바로 사라집니다!
양파가 귀 안의 염증을
가라앉혀주기 때문입니다!
3).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눈에 뭔가 들어가면,
가능한
빨리 빼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눈을
문지르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틀렸습니다!
당신은 그저
이물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망막을
긁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방법은,
양파를 컵 처럼
눈 위에 얹는 것입니다!
바로 눈물이 나와서
어떤 이물질이라도
즉시 한 방에
흘려 보내 줄 것입니다!
4).
칼에 베거나 찢어졌을 때
부엌에서 칼로 베였다면,
양파야말로 "밴드를 가지고
뛰어오는 애인보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양파를
상처 위에 대고 있으면,
즉시 지혈이 될 뿐 아니라
소독을 해주는 효과도 있어서
염증을 예방해줍니다!
심지어, 상처도
훨씬 빨리 낫습니다!
5).
흉터!
누구나 하나쯤은
흉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로 얻은 흉터이건,
수술 이 후의 흉터이건,
대부분 평생
몸에 남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양파를 잘라
체에 거른 즙을 사용하면
상처의 변색된 부분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천 조각에 양파즙을 적신 후
상처 위에 대어보세요!
하루에 몇 번만 반복하면
3일 후에는 원래 피부색이
돌아을 것입니다!
6).
염증이 있을 때
피부에 염증이 있다면,
약간의 우유에 빵 몇 조각과
신선한 양파를 넣어 연고처럼
될 때까지 끓여보세요!
염증이 생긴 부위를
잘 닦아낸 후, 이 연고를
조금만 발라보세요!
그리고 잘 마를 때까지
2 시간 정도 기다린 후,
남은 양파 연고를
깨끗이 씻어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증은 사라질 것입니다!
7).
햇볕에 탔을 때
피부가
햇볕에 타게 되면,
표피층이
대부분 파괴되면서
피부 표면이
빨갛게 변합니다!
양파 한 조각을 해당
부위에 대고 있어보세요!
그리고 나서
계란 흰자를 조금 발라주면
피부를 보호하는 동시에
양파의 영양분을
녹여내는 역할을 합니다!
효능은 즉시 나타나서
3시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8).
벌레에 물렸을 때
특히 말벌 혹은
벌에 쏘였을 경우
그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기
부어오르기 마련입니다!
즉시 찬물로 씻어내고
양파를 대어보세요!
양파즙이 증발하면서
피부에 남아있는 독을
빼낼 뿐 아니라 붓기도
훨씬 빨리
가라앉게 합니다!
효과는 몇 분 안에
벌에 쏘였다면,
양파보다 더 나은
치료제는 없습니다!
정말이지 환상적입니다!
양파는 가격 부담도
크지 않으면서
다방면으로 유용합니다!
가장 좋은 점은
100% 천연 치료제라서,
피부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화학성분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Life
주남 저수지의 가을!
휴
사랑 그것은!
참고 인내하며!
감래하며 헌신하며!
상대의 상처를 담을 넉넉한 그릇을 준비한 끝없는 미련을 떨쳐버릴
시련을 버리는 연습을 갈구하는 것.
그러나 사랑은 나를 지키고 미련을 버려 자신을 본 모습을 복원하는것.
버려서 남는 것은 미련이다.
이 미련 마져 지우개 없이 지워 삶을
지워 운명화 시키는것!
청춘의 시간을 지나 사랑을 배우고 진정함을 배운 현실 시간은 돌고 돌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허허로운것에 만족을 갈구하지만 결제의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목적없는 타성에 늪에 갚혀 가치 없는 시간만 축내고 있다.
과거를 버려 편안해지는 다소한 삶에서 만족해가는 일상이 이제 연습이 되어간다.
사랑 그것은 혼돈의 시간을 냉정과 정열로 미련없이 사는것!
바람이 전하는 말
해는 중천에 걸려 뜨것운 햇살을 품어 내더니 이제는 한 밤중외다!
속정이 깊은 당신의 생각은 가슴깊이
넣어 둔터라!
잠시의 생각은 결정을 정리한 소둔은
시간이 해결 할 것이외다.
망설임 없이 뱃어낸 말은 다른 생각을 밀어내어 다시 온전한 나로 돌아온다.
일정한 한 곳에 정착을 꿈꾸고 언젠가 원천화 할 공간은 때가 되면 이루어 드릴 것이 외다!
그생각이 당신의 노고에 답하는 것이 아닐것입니다!
내가 돌아갈 중천!
남은 시간에 당신이 주는 안락함의 이시간은 아직 한낮 입니다!
양면의 칼날을 가진 우리는 본성에 따라 격동을 유발하지만 우리는 아직 온전한 감성은 읶지 못한 풋내나는 삶을 꿈꾸지만 우린 중년의 끝이라오!
축복 받는 삶의 꿈은 잊어지고 곧은 성품이 주는 안정을 도모 할 미션으로 남은 노년을 준비할 시간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물리적 한개를 벗어날수 없는
청춘을 소멸 할 에너지를 가진 중년의
터널이 주는 미련을 더하는 전진만 남은 긴밤 인간이 느끼는 소리없는 감성만 못다한 소멸의 시간만 남은 투윈의 삶은 언젠가 소멸 할것입니다!
삶도 감성도 안정도 희망도 비원이 주는 미련도!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 일 것이다.
멈춤이 있는곳!
시선은 고정 되었지만 생각은
아직 집중 되는것은 욕심어린
잡 생각들이다!
어디쯤에 나는 서있는가?
생각이 마주치는곳에 난 아직
서 있다.
아름다운곳 그곳이 이곳임을
알기에 난 미련을 지워 공간이
주는 편의를 제공 받아 이곳에
머문다!
시 공간을 초월한 자유는 찾지
못해도 안식은 찾아가고있다!
누굴 탓하고 누굴 원망하던 동심
은 지워지지 않는 미련이건만!
추운 엄동은 온기를 찾지 못한
미련의 빚덩이만 시린 시간이다!
사람 살이 다 그런것이지 하던
지난 대화가 그리운 날이다!
편한밤 되시구려!
그리운 나의 봄날이여!
때!
요즘 젊은이는 가장 나 다운것 을 추구하는 세대!
현실적인 태도를 추구하는 세대다.
과거는 망각이나 한듯 미래를 추구하는 목적은 나자신부터챙기는 이기적인 세대같다.
우리 세대는 미래를 걱정하는 아쉬운
과거의 시간을 망각이나 한듯 시간을 살지만 아직은 젊은 청춘의 시기라도
보상처럼 젊은이들을 대하고 청춘의 시기의 보상 처럼 과거의 삶을 다음 세대에게 되물림을 거부한다.
온전한 나자신을 찾지못해 거부한 삶을 살지만 우린 안전한 세대가 아님을 알고있다.
시간은 되물림은 없지만 안전하지 못한 시간은 코로나19로 2년의 기간은 멈춤의 연속이다.
부디 주위 모든 인연들이 안전과
행복을 빌어본다.
형제여!
동무여!
그리고
두고갈것 밖에 없는 사소한 미력한
시간들이여!
잊어지고 값지 못한 미련들은 아직도
남았고 나의 선택이 2022년을 미련없는 날들을 만들것이다!
오늘도 달빛은 하늘을 밝게 비추고
외로움의 시간들은 이젠 멈추어 외롭지 아니하고 쓸쓸하지 않아 명월은 차가운 빛만 남기니
처다볼 용기를 잃었던 날들은 멀어져
가지만 오늘은 한겨울의 매화가
그립고 매화향이 그립다.
머잖은 날 주남을 지키던 철새가 날아
날아가고 봄은 다시 필것이며 사계는
다시 저물것이다...나의 청춘도! 멈추는 날에는 후회 없는 날이되어
이날의 기억을 회상하고 싶다.
나의 적은글은 후회없고 미련만 있을
뿐이다.
종일 뵐 무릅이 엽에 있고 지금이 행복한 시간이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고 당신이 있으니!
모두가 떠나가는 이곳에 같이 머물고 있으니!
아직은 지지못한 청춘 앞에 기억은 소실을 거듭합니다!
우리는 추억을 향유하며 추억하며 잊어지는 무향의 인격체이다!
무지한 삶의 고배를 건너 이젠 남은 삶은 아름답게 살아 내는것!
나자신 외에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卽時現今 更無時節) 즉시현금 갱무시절
"지금이 할 때이고 그때는 다시 없는법!!!"
"애써 움켜지지 마라.
삶은 어차피 바람같은 것.
쥐었다고 생각할 때 이미 그것은 없다!
그러니 너무 안달하지 말자.
좀 여유롭자.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말자.
좀 대범하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어차피 영원히 쥐고갈 순 없잖은가!
당신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해주며 나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벽에 눈뜨면서 당신께 하는 말입니다!
함께 있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磨斧爲針(마부위침)
磨 갈 마
斧 도끼 부
爲 할 위
針 바늘 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努力)과 끈기 있는 인내(忍耐)로 성공(成功)하고야 만다는 뜻.
이백(李白)이 학문(學問)을 도중에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늘을 만들기 위해 도끼를 갈고 있는 한 노파를 만났다.
그 노파의 꾸준한 노력(努力)에 크게 감명을 받은 이백(李白)이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학문(學問)에 힘쓴 결과 학문(學問)을 완성(完成)했다.
우리는 100%만들기 위하여 어디에서 멈춤을 시작해야 하는지 잊고 살며 연습을 거듭한다. 선아!
많이 배워라!
무지한 삶은 배우지 말아라!
보고 싶군아.
Your bride is beautiful.
She shines at your brilliant gaze.
It's a good thing I came here.
I'm so shabby, I'm abandoning you
I cried a lot and hated him a lot.
I've had a lot of lingering feelings.
Now I'm really free.
Flowers and love are ugly when they wither.
Love that died with you, abandoning you once again.
I forgot your pouring confession and your heart that put me to sleep.
I forgot everything. I want to forget it.
I cried a lot and hated him a lot.
I've had a lot of lingering feelings.
Now I'm really free.
Flowers and love are ugly when they wither.
Love that died with you, abandoning you once again.
I forgot your pouring confession and your heart that put me to sleep.
I forgot everything. I want to forget it.
Flowers and love are ugly when they wither.
Love that died with you, abandoning you once again.
I forgot your pouring confession and your heart that put me to sleep.
I forgot everything. I want to forget it.
you
I hoped it wasn't. I prayed for a long dream.
It's so hard for me to live without you
I'm sad about the past when I loved you so much. Tears keep falling down. You're the only one in my life.
I love you. I will never forget you.
I'm sorry I couldn't protect you.
I want you to see me happy
I hope you start anew
The sky separates us, but we try to let you go with tears,
Do you know how much I loved you?
I'll live watching you forever I hope you're happy
I'm sad about the past when I loved you so much. I keep crying.
You're the only one in my life.
I love you. I will never forget you.
I'm sorry I couldn't protect you.
I want you to see me happy
I hope you start anew
The sky separates us from each other.
I try to let you go with tears,
Do you know how much I loved you?
I'll live watching you forever I hope you're happy
I love you.
I'm sorry I couldn't protect you.
I want you to see me happy
I hope you start anew.
(The sky is...)
비루한 시간들은 또다른 나의 안식을 방해한다.
다놓아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시간을 자신을 괴로움의 대상으르 만들어 가고있는가? 집착이 만든 사물들...과거 시간의 굴레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 불교의 이해 *
불교의 근본 사상...(6) 가전연경(迦전延經)의 정견(正見)
[불교의 근본사상] 매이지 않고 여의지 않는 영원한 진리
10. 가전연경(迦전延經)의 정견(正見)
가전연경이란 근본불교에서 가장 핵심되는 경입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정등각(正等覺)한 내용, 즉 중도(中道)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가전연경에 대해서 논의가 많았습니다. 그런 만큼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또 중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이 가전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가전연이란 부처님 신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논의제일(論議第一)이었던 가전연존자를 말합니다. 아주 의논을 잘하고 논의에 밝은 분이었습니다.
어느날 가전연이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대덕(大德0이시여 정견(正見)을 갖추어야 한다, 정견을 갖추어야 한다 하시니 정견이란 어떤 것입니까?」
모든 세간의 학문이나 종교는 무엇이 있다(有)든가 무엇이 없다(無)든가 하는,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의두 가지 견해에 떨어져 되어 있습니다. 일체의 모든 상대적인 대상에서 가장 기본되는 견해가 유·무라는 견해이니 이 상대적인 유·무가 완전히 해결되면 그밖의 모든 상대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유와 무를 대표로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거 고(苦)와 낙(樂)을 가지고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오비구(五比丘)가 고행(苦行)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고와 낙을 말씀하셨던 것이고 이 가전연경에서 정견(正見)이라는 근본문제를 가지고 깊게 설명함에 있어서 일체 세계의 대표적인 상대인 유와 무를 들은 것입니다.
변견(邊見)이란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이라는 뜻입니다.
「가전연아, 정혜(正慧)로써 여실(如실)히 세간의 집(集)을 관(觀) [正觀生]하는 자(者)에게는 이 세간에 무인 것이 없다.[非無] 가전연아, 정혜로써 여실히 세간의 멸(滅)을 하는 자에게는 이 세간에 유인 것이 없다.[非有]」
남전대장경 제13권 상응부경 가전연경(南傳大藏經 第十三卷 相應部경 迦전延經)
집(集)이란 4성제(四聖제)의 집제(集제)이니, 집제란 연기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기법(緣起法)에도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관으로 연기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이 일어난다,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생겨나 살아가고 있고, 있음으로 하여 결국 존재해 있음을 말하니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세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여 보았자 통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책상도 있고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세상 모든 것이 없다는 견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생(生)하는 법을 바로 본다(正觀生)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다 존재해 있고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는 것을 바로 보면 없다는 견해는 있을 수 없으므로 결국 없음이 아닌(非無) 것입니다.
멸(滅)이란 사성제(四聖제)의 멸제(滅제)이니 멸제란 역관(逆觀)으로 연멸법(緣滅法)을 이르는 말이니 설명하자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것으로써 책상도 나무가 썩어 버리면 없어지고 너도, 나도 촛불도 시간과 공간이 다하면 없어지기 마련이며 그러므로 모든 것은 또 다른 한편에서 관찰해 보면 소멸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을 없어지는(滅) 법을 바로 본다.(正觀滅)는 것이며 이런 견해로 세상을 보면 모든 존재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내가 없는 것을 바라보면 있다는 견해는 있을 수 없으므로 결국 있다는 것이 아닌(非有)것이 됩니다. 따라서 없는 것이 아닌 있다는 견해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다시 모든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견(有見)측에서는 무견(無見)이 틀리고 무견 측에서는 유견이 틀리는 것입니다.
「가전연아, 이 세간은 다분히 방편(方便)에 취착(取着)하며 계교(計較)하며 사로잡히(囚)나니 성제자(聖弟子)는 이 마음의 의처(依處)에 취착하며 계편(計便)되어서 「나의 나」라고 사로잡히지 않으며 착(着)하지 않으며 머물지(住) 않고[囚有消滅], 고(苦)가 생(生)하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아[定觀亦生亦觀] 혹(惑)하지 않으며 의심(疑心)하지 않으며 타(他)에 연(緣)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生)하나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어째서 무엇이 있다, 무엇이 없다하는 변견에 집착하느냐 하면 그것은 사량분별 때문입니다. 아(我) 주관과 아소(我所), 객관등의 모양에 사로잡혀 사량분별하는 이것을 여기서는 방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견이 생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사량분별에 의한 집착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제자, 즉 부처님의 제자는 사량분별에 의한 집착심을 버리고 모든 분별심, 생멸심을 떠나버리며 결국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닌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하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바로 본다는 말입니다. 그냥 고가 생하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는 것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세간에서 보는 것은 분별심으로 보는 것이고 부처님의 제자는 분별심을 떠나서 보기 때문에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집착하고 계사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로 잡히거나 머물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무주심(無住心), 무분별심(無分別心)에서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변견은 분별심이 근본이 되어 있고 부처님 제자의 정견은 무분별심이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이니 불생불멸의 경지에서 생멸을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는 모든 분별에 사로 잡히거나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는 다는 것은 쌍차(雙遮)를 말하며 고(苦)의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는 것은 쌍조(雙照)이니 이것이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定觀亦生亦滅)는 것입니다.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는 것은 변견이 아니며 생멸견해가 아닙니다.
생멸적인 변견은 바로 삼차원의 세계에서 보는 관점이고 생멸을 떠나서 생멸을 바로 본다는 것을 묘유(妙有), 즉 사차원의 세계에서 보는 견해로서 절대적인 견해입니다.
앞의 말씀을 잘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집착을 떠난다고 하고서 결국은 또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고 했으니, 이 생멸은 보통 생멸의 생멸이 아닌가 하고 오해하게 되는데 이것은 생멸의 생멸이 아니고 불생불멸의 생멸, 즉 집착하지도 머물지도 아니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으니 여기서 말하는 생멸이라는 것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생멸,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의 생멸입니다. 생멸의 생멸이 아니라 쌍차에 의지한 쌍조의 생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마음의 의지처, 즉 분별심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도 아니한다고 부정하였으므로 그것은 모든 생멸을 부정한 것입니다. 모든 생멸을 부정하고 나니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아 분별심이 없이 이에 지혜가 생한다는 긍정이 나옵니다. 긍정은 심광명(心光明)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별심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 아니하면 심청정(心靑淨)이며 진공이며 쌍차입니다. 심청정하여 생멸을 바로보면 심광명이고 모유이며 쌍조입니다. 그러므로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보아서(定觀亦生亦滅) 진공묘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혹(惑)하지 아니하며 의심(疑心)하지 아니하며 타에 의지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하니 이것이 정관(正觀)이다」하는 것은 부처에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조사에도 의지하지 아니하는 머물음이 없는 마음, 무주심(無住心)에서 진실의 지혜가 나타나는데 이 지혜를 정견(正見)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무주심이란 진여심, 반야심을 말하니 의지함이 없는 완전한 진공이 즉 진여심이니, 의지함이 없는 진여반야에서 지혜가 생하니 이것이 정견이라는 것입니다.
그 정견의 내용은 모두 집착심, 생멸심을 다 버리고 생멸을 바로 본다는 것이니 쌍차하여 쌍조한 것이며 진공묘유이며, 청정심을 얻으며 심광명이 바로 현전함을 말합니다.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이 아직 완전한 연결을 못시키고 있습니다.
중도라 하여 양변을 여읜다, 쌍차한다 하는 부정의 면은 보통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는데 다시 양변을 살린다, 쌍조한다는 부정한 후에 다시 그것을 긍정하는 이것을 지금도 학자들이 잘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일본에서 좀 많이 연구했다는 학자들의 책을 봐도 양변을 여읜다는, 쌍차라는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드러나 있으나 그걸 가지고 증거를 대는데 있어 부정한 후 그것을 다시 긍정하는 면에 대해서는 즉 양변을 살리다, 쌍조한다는데 대해서는 부처님의 밀의(密意)로서 은밀히 말했다고만 말하고 확실한 증거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만치 이것이 어려운 대목입니다.
밀의로써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쌍차, 부정(否定)하신 후에 다시 분명하게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보고, 타(他)에 의(依)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하나니 이것이 정관이다」라고 쌍조, 다시 분명히 긍정하여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밀의로서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가전연아, '일체는 있다(有)'라고 한다. 이것은 첫 번째 극단이니라. '일체는 없다(無)'라고 한다. 이것은 두 번째 극단이니라.[ 見] 가전연아, 여래는 이 양단(兩端)을 떠나서 [離見] 중도에 의해서 법을 설하나니라」
[非有非無, 亦有亦無, 亦生亦滅]
모든 것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하나의 극단이라는 것이다. 또 모든 것이 없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떠한 실체도 없어서 영원성이 없어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제 2의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존재에 영원성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양 극단을 떠나서 중도에 의하여 법을 설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즉 비유비무(非有非無)며 역유역무(亦有亦無)이며, 역유역무가 역생역멸(亦生亦滅)입니다.
앞 구절에 「마음의 의처에 취착하지 아니하고 계사되지 않아서 거기에 머물지도 아니한다」고 한 것은 양극단을 여윈 것이니 이것은 진공이요 쌍차입니다. 그리하여 「고(苦)가 생기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본다」는 것이니 이것은 묘유이며 쌍조이니 비유비무이면서 역유역무가 되는 것입니다. 생(生)이 즉 유(有)이며 멸(滅)이 즉 무(無)입니다.
여래(如來)가 정등각(正等覺)하고 법을 설하는 것은 중도이니, 중도는 모든 양 극단을 떠나서 양 극단이 서로 통하며 융합하는 것입니다
「무명(無明)에 연(緣)하여 행(行)이 있으며 행에 연하여 식(識)이 있나니라[亦生亦有] 이러한 것이 전고온(全苦蘊)의 집(集)[非無]이니라. 무명의 멸에 의(衣)하여 행(行)의 멸이 있고, 행이 멸하는 고로 식의 멸이 있나니라. [亦滅亦無] 이러한 것이 전고온의 멸이니라.」
처음엔 12연기(十二緣起)의 순관(順觀)을 듣고 끝에가서 전체를 들어 전고온의 집(集)이라고 하시니 이것은 사성제(四聖諦)의 집제(集諦)입니다. 앞에서 집제를 바로보는 사람은 없다는 견해가 없다고 했으니 없는 것이 아니다(非無)는 것입니다. 비무는 즉 또한 있다(亦有)는 말이니, 생(生)을 바로 본다(亦生)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 이해가 바로 서야 합니다.
집(集)을 바로 보는 사람은 없다는 견해(無見)가 없다 하니 없다는 것이 없다(非無)는 것입니다. 집을 바로보는 사람은 생을 바로 보는 사람이니, 그것은 또한 생함(亦生)이니, 그러므로 없다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내용적으로는 또한 있음이 됩니다. 생을 바로 보는 것을 집(集)을 바로 보는 것이므로 그것이 없다는 것이 없다(非無)는 것이므로 한가지 말 속에 두가지 뜻을 표현하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어째서 무엇이 있다, 무엇이 없다하는 변견에 집착하느냐 하면 그것은 사량분별 때문입니다. 아(我) 주관과 아소(我所). 모든 것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하나의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옵니다!
진실의 양날 모냥 비는 내립니다!
외로움이 쌓이여 비는 내리고 오늘은 아직 조용하지만 비는 아침 장막을 깨우고 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늙어서 ,병들어서,외로워서 죽을것입니다.
우린 얼마나 이길을 더 갈수 있을까?
오늘도 저물어 가고있다! 밤은 깊어 초시침은 오늘을 지워가고 있다. 얼마만큼의 자유를 찾았나.
편안한 시간으로 가고 싶다.
My name is Saja. I’m a wife, a mother, and a woman who once believed her story would be simple. I thought my days would be filled with watching my daughter grow — from her first smile to her first steps — surrounded by the small joys of everyday life.
But life had other plans.
War has returned to our home. Again. And once again, we find ourselves living under skies that never seem to rest.
There was a moment — a fragile, breathless moment — when the bombs paused and the world seemed to remember us. It gave us hope. We thought maybe, just maybe, we could start to rebuild. But now, we are back in the dark — hiding, holding on, praying.
I’m writing this not as someone seeking pity, but as a mother who has no other choice but to speak.
Imagine holding your baby in the middle of the night, not because she cried, but because the world outside roared too loud for either of you to sleep. Imagine whispering bedtime stories not to lull her into dreams, but to keep the fear from settling into her tiny bones.
This is my life.
This is my daughter’s life.
And even now — especially now — I believe in softness. I believe in kindness. Because when everything else is taken from you, hope becomes the most valuable thing you have.
Why I’m Reaching Out Our home has been damaged. Our lives changed. But through it all, my daughter wakes up every morning with a smile. She reaches for me with trust, with love, with faith that I will keep her safe.
That’s why I keep going.
I’ve launched a campaign to ask for help — not because it’s easy, but because silence is no longer an option. I am asking for support not just for me, but for my baby, and for the quiet strength of so many mothers like me who are fighting, every single day, to hold their families together.
How You Can Help: 🤍 Help us restore parts of our home so we can live with dignity 🤍 Support women and mothers in Gaza with access to care and resources 🤍 Keep the light of hope alive for a generation born in the shadows of war
💛 If you can, please support our journey here:
If you can’t give, please consider sharing. Your voice might be the reason someone else hears ours.
From My Heart to Yours Maybe our lives are worlds apart. Maybe you’ve never lived through war. But if you’ve ever held a child and wished the world could be better for them — then you understand more than you know.
I don’t want my daughter to grow up thinking the world turned away.
Please, if you’ve read this far — thank you. Thank you for seeing us. Thank you for caring. We are still here. Still hoping. Still holding on to every kind act like it’s a lifeline.
Spring Meet Again! The painful years that passed like the wind
Now the cold winter is disappearing.
With the warm spring scent, my season came to me quietly
The time when even the moonlight in the night sky is hidden
It reminds me of the years when I cried in secret
I will be grateful for the sorrows of those years, which were stained with tears
The broken love has become wrinkled
In front of the season when new shoots bloom at the end of the curved branch
The memory of pain is now thank you
soothe the time with my song
The painful memories became memories of pain
And the longed-for lives are a drink, and even regret is luxurious.
The weight of my life disappears into the sadness buried in my heart deeply, and in that life, the abyss is brought out again to bring back memories, but the times that I miss are becoming my songs.
모든 것은
[나로부터의 시작]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는데,
늙고나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합니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 입니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삽니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릅니다.
갈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지옥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됩니다.
천국 만드는 방법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상처를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입니다.
산고를 겪어야
새생명이 태어나고,
꽃샘 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고,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옵니다.
거칠게 말 할 수록 거칠어 지고,
사납게 말할 수록 사나워 집니다.
결국 모든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세상은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
* 내 탓이오!